[필사하기] 시골 산책, 존 다이어 <걷기의 즐거움> 중에서

2024. 11. 3. 14:18책읽기/책읽기_여러분야

 
 

<시골 산책> 존 다이어, <걷기의 즐거움> 중에서

 
<걷기의 즐거움> 은 매 주말 참석하는 독서 프로그램 <책 마실>에서 동지들과 함께 읽는 책이다. 작가들의 매혹적인 걷기의 말들, 한 줄 한 줄이 보석 같다. 그냥 읽기만 하기에는 아쉬워 마음 가는 부분을 필사하기로 했다. 그 중에서 존 다이어 <시골 산책>이다. 
 
존 다이어 (John Dyer, 1699~1757)는 영국의 시인. 웨일스 출신으로 화가이며 목사였다. 대표작은 <그롱거 언덕>(1726)으로, 시골을 회화적이며 고전적인 풍경으로 그려냈다. 
 
<시골 산책>은 웨일스 지방 카마던셔의 그롱거 언덕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기록한 시다. 주위 풍광을 묘사하는 문장에서 빛과 음영, 그리고 색감에 주목하는 화가로서의 그의 시선이 특별하다. 고향의 풍경에서 느끼는 환희와 자부심은 훗날 윌리엄 워즈워스 같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시골 산책> 존 다이어 (단락 나누기는 임의로 함)
 
따스한 아침 햇살과 함께, 불그스레한 뺨을 붉히며
힘찬 태양이 떠오르네.
일찍 잠에서 깬 새들은 하늘을 날고,
태양을 깨우려 달콤하게 노래한다네.
 
이 멋진 날 나는
너른 들판에서 노닐기로 마음먹네.
머리 위로 탁 트인 하늘에는
신들이 거닐고 있고,
노란 헛간 앞에는 
가지각생의 멋진 수탉들이 거들먹거리며,
빈 왕겨를 흩뿌리네.
암탉, 오리, 거위들이 새끼를 품고,
칠면조는 게걸스럽게 먹고 있네.
농부들은 알곡이 풍성한 바닥에서
곡식을 털며, 문 앞으로 모두를 불러들이네.


얼마나 볼만한 자연의 풍경인가!
오거스타! 먼지투성이 이마를 닦아요. 
어둠에 묻힌 계곡과 빛나는 산들이
눈앞에 보이고, 나는
푸른 하늘과 은빛, 금빛 구름을 바라보네.
 
이제 들판으로 나서니
활짝 핀 무수한 꽃들이 나를 맞고,
울타리들이 향기로운 인동덩굴 냄새를 풍기며 나를 반기네.
데이지꽃 깔린 초원으로 들자,
반짝이는 내 눈에
고요히 흐르는 시내가 들어오네.
느릿하게 즐거운 듯 흐르고 있네.


힘겹게 걷다가 즐거움을 맞듯이,
시골 젊은이가 지친 나머지 잠에 빠져 있네.
옆에는 종이가 펼쳐져 있네,
그 안에 건강한 음식이 담겨있네. 행복한 젊은이여!
지체 높은 왕이나 왕자보다 더 행복한 이여!
왕관보다 달콤한 잠을
솜털처럼 안락한 바닥에서 즐기시게.
 
이제 태양이 정오의 기운을 뿜어대고,
내 주위로 타는 듯한 빛을 뿌리네.
좀 더 거닐다가,
숲 그늘 밑으로 들어가,
참나무 뿌리 위로 퍼져나간
녹색 이끼 위에 몸을 누이네.
사방이 적적한데, 숲 속에서 즐거운 듯
웅얼거리는 냇물 소리가 들려오네.
잔가지 사이로 지저귀는 새들이
울어대며 적막감마저 흘리고 있네.
아! 위대한 적막감이여!
분주한 시인의 마음마저 정복하는 그대여!


시인의 상념도
아름다운 폭포 소리의 호출에 따라나서네.
사방이 고요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두더지처럼
아무런 두려움 없이 떠올라,
여기저기 무리 지어 다니네.
어떤 상념은 아름다운 시의 샘을 보려고
급하게 파르나소스산으로 날아간다네.
노래하는 뮤즈는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는 샘만 남아 있네
이따금 맹종하는 수사슴 한 마리만
더럽혀진 샘에서 놀고 있네.
 
어떤 상념은 환희에 찬 길을 쫓지만,
또 어떤 상념은 그 축복의 장을 지워버리고,
슬픔의 가시밭길에서 방황하며,
사라진 시신을 그리워하네 
제발 떠나지 마요-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네.
얼마나 부드러운가! 너무나 달콤하고 청아하네!
하지만, 그건 그녀가 남기고 간 메이리일 뿐,
그녀의 노래가 아니라네.
 
어떤 상념은 야망을 꿈꾸네.
저 아래 입 벌리고 있는 심연이 보인다네.
누군가는 궁정을 기웃대다가, 그 안에서
아첨 떨며 눈치 보는 사람들을 보네.
하지만 별안간 무언가 내 눈과 귀를 두드리네,
재빠른 사슴이 뛰어오는 게 아닌가!
나뭇가지에서 바삭 소리가 나자,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네. 일어나, 다시 거니네.
 
이제는 숲을 떠날 시간이 되었네.
해가 기울고 저녁 바람도
나무들 틈에서 속삭이기 시작하네.
 
숲 속 어두음에서 벗어나
밝은 곳으로 나오자
오래된 나무에 기대 있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한 노인의 거처가 보이네
버드나무 담벼락에 가시 무성한 언덕배기,
그 아래 조그만 정원이 놓여 있네.
바닥에는 활짝 핀 꽃들이 펼쳐져 있고,
향기로운 풀이 깔끔하게 깔려 있네.
한 줄기 시냇물이 서서히 흐르면서
영원히 변치 않은 새파란 정원을 만드네.
 
노인이 삽질로 허덕대며
응달 아래서 양배추를 캐고 있네.
다 닳은 까만 갈색 바지에
백발이 된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있네.
이제는 남은 활력조차 식어가고
주름진 손과 얼굴만 보이네.
이제 힘을 내어 그롱거 언덕으로 간다네.
마침내 우거진 숲이 모습을 드러내네.
세상에나! 공기가 얼마나 신선하고 정갈한지!
 
여기서 잠시 쉬어가네.
여기가 어디지? 자연의 품속인가? 내 눈앞에
자연의 그림들이 펼쳐지네.
성당! 그리고 마을들! 그리고 첨탑들! 숲!
언덕! 계곡! 그리고 들판! 냇물!
물밀듯 내 눈앞에 
헐벗은 황야와 메마른 들판이 보이네.
저 아래 쾌적한 마루터기를 보게.
시인의 자부심이자 쉴 곳일세.
새벽부터 저녁까지 햇살이 비춘다네.
매이라기 떠들어대는 숲을 보게나.
깔끔한 정원, 테라스 길,
황무지와 향기로운 내음 푼기는 덤불숲,
어두운 나무 그늘과 빛나는 호수,
신이시여, 이 소박한 자리를 
영원토록 즐겁고 깔끔한 
나만의 공간으로 지켜주소서!
 
가파르게 솟은 저 너머 언덕을 보게나.
서서히 흘러가는 깊은 강물 위로 펼쳐져 있지 않자.
무성한 숲 아래 감춰진 피라미드 같다네.
꼭대기로 드러나게 솟은 터가 보이네.
오래된 푸른 탑의 무너진 비탈은
저 아래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네.
꽃이 만개한 저기 들판을 보게나.
목동 주위로 양 떼가 모여들어,
목동의 노래를 들으려 한다네!
아무 걱정 없이 다리를 틀고 앉아,
이끼 낀 둘에 기대어 있다네.
무심한 시간을 채우는 노랫소리는 깃털처럼 저 멀리 날아간다네.
저기 꽃이 만발한 초원을 보게나.
은빛 시내가 흐르고, 버드나무 아래 그늘진 곳
그 아래 낚시꾼이 서 있네.
손에 낚싯대를 쥐고,
입질하는 치어를 낚아챈다네.
 
지는 해가 얼굴을 붉히며
서서히 흘러가는 시냇물에 입 맞추고는,
저 언덕 너머로 희미하게 사라지네.
아니 어두운 구름이 막아선다네.
홀로 남겨진 들판에서 일하던 머슴이
지친 소들을 풀어놓고 있네.
소 울음소리에 산들이 울고,
저 아래 골짜기로 메아리쳐 울리네.
신이 난 목동들이 피리를 불며 내려오고,
양 때를 우리로 몰고 있네.
 
이제 불을 지피자,
연기가 꼬불고불 소용돌이 모양으로 하늘로 오르네.
가벼운 마음으로 다들 집으로 향하고,
나는 애버글래즈니로 내려오네.
오호! 하지만 나 혼자 고독하게 거닐지 않고
클레이오 뮤즈와 함께 이 길을 걷는 그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