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9. 15:52ㆍ책읽기/책읽기_여러분야
걷기의 즐거움, 수지 크립스 엮음, 윤교찬. 조애리 옮김
부제: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의 매혹적인 걷기의 말들
매 주말 참석하는 독서 프로그램 <책 마실>에서 동지들과 함께 읽는 책이다. 한 줄 한 줄이 보석 같다. 그냥 읽기만 하기에는 아쉬워 마음이 가는 부분을 필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월트 휘트먼이 <열린 길의 노래>에서 말한 것처럼 "종이는 책상에 두고, 펼치지 않은 책은 책장에 꽂고" 그냥 떠나기로 한다.
<엮은이 서문> 중에서
"혼자 걸어서 여행할 때처럼 완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고, 감히 표현하자면 그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 장자크 루소, <고백록>에서
발을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단순한 행위인 걷기는 인간의 진화과정을 통틀어 예술적 표현에 자극이 되어왔다. 걷기라는 주제는 영문학 초기부터 은근하게나마 고통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걷기에 주목하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기에, 오는 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시간을 투자할 만한 행위가 된다.
- 걷기를 대하는 관점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마음도 발걸음처럼 시속 3마일(4.8킬로미터) 정도로 움직이게 된다. 우리 시대 삶의 문제는 생각이나 사색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 리베카 솔닛 <방랑벽, 2000>
시골길을 걸으며 느끼는 적적함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안락감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 위대한 적막감이여! 분주한 시인의 마음마저 정복하는 그대여!"
- 존 다이어
선집에 실린 대다수의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들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옛말을 지지한다.
명상은 걷기의 열매다... 여름과 겨울 내내 그런 생각의 열매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내가 지나갈 때 떨어지는 것 같다.
- 월트 휘트먼 <열린 길의 노래>
걸으며 사색하다 보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성적 차원에서도 위로받게 된다. 걷기는 강력한 감정 촉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선집에 실린 도로시 워즈워스, 존 클레어, 로버트 사우디,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그리고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가 보여주듯이, 걷기와 감성이라는 주제가 낭만주의 시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이들에게 걷기는 종종 정신적인 경험이 동반하는 활동이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 걷는 공간은 둘만이 나눌 수 있는 낭만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토머스 하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에서 밧세바 애버딘과 트로이 하사가 숲 속에서 만나는 장면이나, 로사 N. 캐리의 <다른 소녀들과 다르게>에서 딕과 낸이 자신들이 함께 걸었던 경험을 소중이 여기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걷는다는 것은 분명 한 곳을 떠나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일상적이 것에서 벗어난다는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이를 두고 월트 휘트먼은 <열린 길의 노래>에서 "종이는 책상에 두고, 펼치지 않은 책은 책장에 꽂고" 떠나라고 했다. 걷기는 여행이 그러하듯이, 가능성과 자발성, 그리고 자유를 가져다준다.
애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에서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하던 어린 캐시 언쇼는 걷기를 통해 자신이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기회를 얻게 된다. 걸으며 여행하다 보면 우리를 얽매었던 것에서 벗어나 떠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윌키 콜린스가 쓴 콘월 지방 여행기인 <철길 너머 산책>에서 작가는 도보여행자가 일종의 인간 거북이가 되는 모습을 그렸다. 거북이처럼 그는 모든 세상 물건들을 배낭에 담고는, "등의 일부가 되어버린 배낭 위에"눕는다. 걷기란 말 그대로 짐을 질 하인이 없는 이상은 삶에 필수적인 것만 빼고 모든 것을 벼려두고 떠나는 것이다. 걷기는 코린스 식으로 멀리 따냐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 실린 많은 글은 우리가 매일 할 수 있는 걷기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상생활 가운데 걷기가 가져다주는 중요하고 귀중한 순간들을 알고 있는 개개인 작가의 경험을 기록하였다.
제니오델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법, 2019>에서 기록하듯이, 어슬렁거리며 걷는 행위의 핵심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예기치 않게 낯선 길을 걷다 보면 시간적 흐름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는다. 순간적이긴 해도 이런 장소와 순간은 피정에 온 느낌을 준다. 긴 피정을 마친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이 말은 시골에서 걷든 도시에서 걷든 우리가 주기적으로 상쾌함을 맛보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해주는 도보 산책은 삶을 지탱해 주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산책은 걷다 보면 항상 일종의 무의식적인 모험 의식이 따라올 수 있다는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다.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의 주인공 루시 스노는 "혼자 런던을 걷는 것 자체가 모험"이라고 말한다. 도시 생활을 관찰하며 거리를 거니는 신사를 의미하는 산책자는 19세기에 이르러 주요한 문학적 비유가 되었다. 도시는 도보 산책자에게 수집할 수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제공해 주는 놀이터가 된다.
소로의 <걷기>에 여성들은 가정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와 걷는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걷기라는 주제는 다른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별다른 목적 없이 단지 시간을 보내는 여가 수단이 아니라, 사회에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편안함을 찾기 위한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남과 북>에서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주인공인 마거릿 헤일을 통해 이런 정서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집 밖의 삶은 완벽했다. 집 안에서 생활은 약점이 많았다." 여성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준 것이 도보 산책일 수 있는 것이다.
에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운문 소설 속 오로라는 레이홀 정원을 배회하며, "나는 아주 젊고, 아주 강하고,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보 산책의 개인적 만족감 너머로 여성의 걷기는 종종 불안감과 의혹의 시선과 맞닿기도 한다. 대부분의 글에서 여성 개인 차원의 만족감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드러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네더 필드 공원을 걷는 에리자베스 베넷의 산책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 베넷 부인은 이를 '멍청한 짓'으로 여겼고 다른 여자들도 '믿을 수 없는 일'로 보았다. 그러나 프랜시스 버니의 <방랑객 또는 여성의 어려움>에서 메이플 부인의 견해는 이와는 조금 다르다. "대체 그놈의 발은 어데 쓰고?" 어쨌든 산책하는 여성은 논쟁거리로 여겨진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걷기를 즐기는 이유는 걷는 동안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한결같이 조용하게 사색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p67
어렴풋한 내 생각들을 가시 같은 껄끄러운 논쟁에 얽매이게 하기보다는 순풍에 떠돌아다니는 엉겅퀴처럼 그냥 놔두고 싶다. 그저 내 방식대로 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홀로 있을 때만 가능하고 원치 않는 동반자와 있을 때는 불가능하다.-77
공기의 느낌, 구름의 색조에 물든 당신의 상상력이 있을 텐데, 어지 그 감흥을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p77
경치구경은 도보 여행이 덤으로 주는 액세서리일 뿐이다. 진정 인간애를 아는 자라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단지 경치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침에 출발할 때 느끼는 높은 ㄴ기상과 기대가, 그리고 하루를 지내고 돌아와 느끼는 안락함과 정신적 충만감에서 오는 즐거움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출발할 때의 흥분감은 여행을 마친 후에도 이어진다. 도보 여행 그 자체가 보상이며, 이후에도 즐거움이 연이어 따라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점을 알지 못한다. 이들에게 하루는 저녁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저녁 또한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p100
도보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홀로 떠나야 한다. 도보 여행은 그 본질이 자유로운 것이기에 자기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다 서다 하며 혼자 떠나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원하는 속도로 갈 수 있고, 보이는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그 결을 따르고, 부는 바람에 맞춰 피리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탁 트인 대기에서 맛보는 황홀경에도 빠질 수 없다. 황홀경에 빠지면 뇌가 서서히 둔해지면서 맑아지기 시작하다가, 종국에는 모든 이행의 단계를 초월하는 평화로운 순간에 빠지게 된다... 도보 여행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만큼 행복한 건 없기 때문이다.-101
나 자신이 행운이므로, 지금부터는 행운을 찾지 않으리라, 지금부터는 더 이상 투덜대지도, 더 이상 미루지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한 상태로 씩씩하게 열린 길로 여행을 시작한다. 지상,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 더 이상 별들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별들이 제자리에 아주 잘 있음을 알고, 별들끼리만 있어도 완벽하다는 것을 안다.- p105
이 순간부터 나는 제한과 상상의 경계선에서 해방되리라,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리라, 스스로 완전하고 절대적인 주인으로서, 다른 살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멈추어 서서, 찾아보고, 받아들이고, 사색하며, 부드럽게,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나를 옥죄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리라. 이 공간에서 심호흡을 하면, 동쪽과 서쪽이 내 것이고, 남쪽과 북쪽도 내 것이다.-p107
흘러넘치는 영혼이 행복이고, 여기 행복이 있다, 행복은 야외에 스며 있고 늘 우리를 기다리며, 이제 행복이 우리 속으로 흘러 들어와 우리는 완전히 충전된다.-p112
호수는 완벽하게 고요했고 대기는 상쾌하고 온화했다.-p124
나는 노을이 타는 하늘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지만, 울려 퍼지는 그 여인의 목소리에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여행하는 나를 배려하는 인간적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p126
집의 창문에서 새어 나온 빛이 얕은 물에 희미하게 반사되고 있다.-p129
그래서 나는 말한다. 거렁라, 그러면 즐거워질 것이다. 걸아라, 그러면 건강해질 것이다. 걸어라, 그러면 너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즐기고 관찬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 걸어라... 걸어라, 그러면 일에 얽매인 이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휴일의 즐거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131
내리막길이었고 정말로 화찬한 여름 날씨였다. 우리는 만보계를 차고 향긋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갈라진 숲을 통해 편한 발걸음을 옮겼다. 오페나우까지 이렇게 계속 걷고 싶었고 걷고 또 걷고 싶을 뿐이었다. 도보 여행의 매력은 걷는 데 있거나 보는 풍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데에 있다. 걸을 때는 박자에 갖추어 혀를 움직이기 좋고, 걷기가 혈관과 두뇌를 자극해 활동적으로 만들어준다. 경치나 숲 내음이 저절로,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새, 눈과 영혼과 감각기관을 홀린 듯 위로해주기는 하지만, 최상의 즐거움은 역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명언이든 헛소리든 상관없이, 즐겁게 턱을 움직이며 수다를 떨고 이를 귀담아들으며 고래를 끄덕이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135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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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걷기는 마음이 시키는 일
2장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3장 걷는 존재들
4장 도시를 걷는 산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