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7. 3. 16:38ㆍ기사쓰기_서울시민기자/서울의강.산.공원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년간 해외에서 풍찬노숙을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면려하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유지를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 하면 죽는 자 남은 한이 없겠노라.” (대한매일신보, 1910년 3월 25일 자)
죽음을 초월한 의연함으로 마지막까지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고 사랑했던 안중근 의사가 순국 하기 전 조국의 동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호소 ‘동포에게 고함’이다. 감동이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안중근 의사는 일제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위험에 처한 1909년 하얼빈역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려 대 한의 민족 혼이 살아있음을 세계만방에 알린 영웅이다. 체포되어 뤼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던 중 1910년 순국했다.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함께 간 일행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묵념의 예를 갖추었다.
민족 정기를 탄압하는 조선신궁이 있던 서울 남산 현 위치에 1970년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했으나 철거되고, 2010년 새 기념관 을 개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어 많이 아쉬웠다.
안중근의 유묵은 그가 뤼순 감옥에서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3월 26일 순국 할 때까지 안중근이 생전에 남긴 글씨다. 우 리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하늘의 뜻을 따르고자 했던 신앙인 의병 대장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깊은 민족 혼이 드러난다. 하나하나 읽으며 마음에 새겼다.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는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는 의미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체 포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자신을 취조했던 검찰관에게 써 준 글귀다.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남산둘레길 역사문화길에 백범광장 공원이 넓게 조성돼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애국 지사를 위해 아름답게 단장된 널따란 공 원에 들어오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백범 김구는 한국 독립 운동가이고 교육자이자 정치가다. 그의 항일구국 운동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상이 설립되었다. 동상 앞으 로 넓은 잔디밭이 조성돼 있고 남산으로 오르는 길과 서울 한양도성 길이 있다. 뜨거운 햇빛 아래였지만 꼼꼼하게 비문을 읽어 내렸다.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남산 위에 우뚝 솟은 N서울타워와 서울 한양도성 성곽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울 한양도성 남산(목멱산) 구간은 장충체육관 뒷길에 서 이곳 백범 광장까지 이어지는 성곽길이다.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성벽을 1970년대 이후 성곽 보존 정비 사업과 1990년대 중반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을 통해 복원되었다.
백범광장에서 바라본 한양도성길 모습이다. 백범광장에서 한양도성길을 따라 내려가면 남대문이 나오고, 한양도성 숭례문 구간으로 이 어진다. 삭막한 도심 빌딩 숲을 향해 부드러운 도성길이 굽이쳐 내려가고 있다. 성곽의 네모난 구멍인 원총안을 통해 보는 성곽 밖의 풍경은 마치 야외 미술관에 온 것 같다.
한양도성길 옆으로 부드럽고 평평한 산책 길도 조성했다. 시민들이 남산둘레길 역사문화길을 오르내리며 산책하고 있다. 평화스러운 도시와 시민의 모습이다.
우리 세대와 후손들에게 나라와 민족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 지사를 민족의 긍지로 여기며 스스로 삶의 표본 과 중심에 세우는 산 교육의 마당을 둘러보았다. 애국 지사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더불어 후손들에게 더 욱 훌륭한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샘솟았다. 나라를 남에게 내주었던 뼈아픈 우리 역사를 잊지 않고 애국 지사들의 정신을 삶 의 표대로 삼으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