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30. 00:29ㆍ책읽기/책읽기_여러분야
정치적 견해와 추구하는 삶의 가치가 서로 다른 보수 엄마와 진보 딸의 좌충우돌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젊은 작가 내면의 마음 이야기, 가족 이야기, 살아내는 이야기 등 진솔한 생각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절대로 풀리지 못할 부분이 있더라도, 어긋나면 어긋난 대로, 이어지면 이어진 대로,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운다.
술술 단숨에 읽었다.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하다.
<본문 중에서>
그래서 내 속의 우는 아이를 찾기 시작했고, 다독이기 시작했다. 눈물이 잦아들 때 즈음,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글이라는 것, 나를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멋진 도구였다. 나는 점점 내 문제를 정리할 수 있었고, 그 문제 안에 있던 보수적인 손 여사(엄마)와 나의 관계도 직시하게 되었다. 나는 내면의 아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첫 문장은 '미안해'였다.
이십 대 중반에 독립 아닌 독립을 했던 나는 여러 번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지만 이번처럼 길게 집에 머무른 적은 없었다. 물론 돌아와서 손 여사 부부(엄마와 아빠)의 감시와 보살핌 아래 사는 것은 꽤 많은 안정을 주긴 했다. 손 여사 부부가 크게 내 삶에 관여하고 있지 않아도 왠지 모를 나른한 평화와 맘 편한 게으름에 계속 발동되는 것 보면, 그래서 집, 집, 집 하는 모양이다.
봄이 되고 나서 나는 내가 본 것들과 기억하는 것들, 그리고 곱씹었던 단어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 감정의 과잉 상태에 놓였던 고단했던 지난 시간들을 고르고 얼러 글로 정리할 수 있는 건, 누군가는 누리기 힘든 사치에 가까운 행복일는지 모른다.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장 확실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십 대 중반이었을 때, 가족들에게 몇 가지 고통을 안긴 적이 있었다. 그때 손 여사는 온몸에 빨간 두드러기가 돋았고, 아버지는 앞니가 빠졌다. 지금 생각해도 내내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자식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절대 무심해질 수 없는 마음,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손 여사와 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절대로 풀리지 못할 부분이 있더라도 지금 우리의 관계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긋나면 어긋난 대로, 이어지면 이어진 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산다. 따로 또 같이.
나는 보수 부모의 돈으로 자랐다. 그 돈으로 학원에 다녔고, 책을 사 읽었다. 손 여사는 매년 몇백 권씩 되는 책을 사줬고, 종이를 아끼지 않고 쓰고 그릴 수 있도록 해줬다. 지금도 여전히 손 여사는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걱정하고, 내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지를 걱정한다.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꽤 오랫동안 나의 고양이들도 봐줬다. 어디 나가서 허풍선이가 될까 봐 언제나 확실한 것만 말하라고 뼈 아픈 조언도 해준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 덕에 나는 진보의 가치를 접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다르지만 다른 모습 그대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모두 다 손 여사 덕분이다. 그러니 엄마, 앞으로도 나를 잘 부탁해.
<작가의 말 중에서>
몇 번이나 원고를 엎었다.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들은 교정 과정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빼버렸다. 내가 내놓은 이야기가 가족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가장 고민이 많았던 건, 내가 과연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또 내 이야기가 남들이 들어줄 정도로 궁금한 것인가 하는 것도 오래도록 나를 무겁게 했다.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선택과 배열을 조정한 것이긴 해도, 내가 선택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최대한 정직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원고를 고치는 와중에도 나는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젊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었을 순간들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자꾸 먹먹해졌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지금껏 부모님은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지지하고 아껴주셨다. 나는 그 누구와도 나주지 못했던 마음이다. 앞으로도 나는 그 지지와 응원으로 건강하고 단단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나누려고 노력할 것이다. 부디 내 글이 두 분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어머니이며, 누군가의 딸인 당신들과 함께 내게 충만했던 그 마음들을 나누고 싶다. 좌파와 우파 모두,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