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한국의 명수필, 피천득 외

2020. 2. 10. 23:54책읽기/책읽기_여러분야

 

저자는 30여 년 동안 교단에서 문학을 가르쳐 온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엮었다. 주로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수필을 모아서 서정적 수필, 비판적 수필, 이론적 수필로 분류하여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읽었던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처음 접하는 글들이다. 필사하고 싶은 수필도 몇 편 있다. 진솔하고 잔잔하게 써 내려간 우리나라 명작수필들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자연관찰, 편안하게 풀어내는 생활 경험 등에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본문 중에서]

 

<수필> 피천득

수필은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글을 쓴다는 것> 김태길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 무언 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하게 실천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을 어떤 형식으로든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 자신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은 우리가 자기의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의 자세를 가다듬는 거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장래를 위하여 인생의 이정표를 세우는 알뜰한 작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헝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으로써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이기도 하다. 만일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이 있거든 그것을 종이 위에 적어 보라. 다음 순간, 그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 떠오르고, 나는 거기서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