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빨간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매리 저, 김양미 역

2022. 1. 24. 21:20책읽기/책읽기_초등고전

 

빨간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저, 김양미 역

 

빨간 머리와 주근깨 투성이 주인공 빨간 머리 앤, 고아원에서 에이번리의 초록지붕 집으로 잘못 입양되어온 11살 소녀다. 어려서 고아가 되고 세상 의지할 무엇도 없이 살아왔지만,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예민한 감수성,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활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수다쟁이의 솔직하고 친근한 감정 표현, 친구와 깊은 우정, 자연에 대한 사랑, 주어진 여건의 소중함, 자신을 키워준 매슈와 마릴라에 대한 감사가 있다. 무엇보다도 어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이겨낼 줄 아는 의지를 가진 '빨간 머리 앤'의 천방지축 철없는 11살 소녀의 성장기다.

 

숫기는 없지만 다정다감한 매슈 아저씨와 잔잔한 교감, 냉정하지만 속 깊은 마릴라 아주머니와의 깊은 애정, 가장 사랑하는 친구 다이애나와의 뜨거운 우정, 학교 친구 길버트와의 경쟁과 대립을 뛰어넘은 사랑, 스테이시 선생님과 사제간의 아름다운 교제, 앨런 목사 사모님과 진지한 소통 등, 앤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의 묘사는 그간 잊고 있었던 누군가를 어렴풋이 떠오르게 하고 마음에 남아있던 기억을 소환하여, 휑한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 번역이 잘 되어 어색함이 전혀없다. 중간중간의 삽화도 아름답다.

 

<저자 소개>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1874년 캐나다의 프린스 애드워드 섬에서 태어났다. 이 섬은 <빨간 머리 앤>의 실제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작가 몽고메리는 소설 속 주인공인 '앨 셜리'와 비슷하였다. 실제로 그녀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컸다. 그녀는 교편을 잡고 기자 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1908년에 발표한 <빨간 머리 앤>에는 그녀의 어린 시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려 있다. 소녀의 풍부한 감성과 우정이 아름답게 묘사된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후 '앤 시리즈'는 얀이 길버트와 결혼하여 중연이 될 때까지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줄거리>

나이가 지긋한 독신자인 마릴라 커스버트와 매슈 커스버트 남매는 농장 일을 거둘 남자 어린이를 입양하려고 했지만 입약을 맡은 스렌서 부인의 실수로 수다쟁이에다가 엉뚱한 여자 어린이 빨간 머리 앤을 입양하게 된다.  앤이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여러 집을 전전하다가 고아원에 온 불쌍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매슈와 마릴라는 고심 끝에 마릴라는 앤을 입양하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자녀를 키워본 적이 없는 커스버트 남매로서는 앤을 키우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커스버트 남매는 앤의 사람을 끄는 매력과 순수함을 통해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인생의 즐거움을 깨닫기 시작한다. 앤은 매슈 아저씨가 교원 학교인 퀸즈전문학교 입학을 기뻐하시도록 열심히 공부한다. 레이먼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장학금도 받지만, 매슈 아저씨의 죽음, 마릴라의 건강 악화로 대학에 가지 않기로 한다. 대신 교사로 취직하여 마릴라와 함께 지내기로 마음 먹는다.


<본문 중에서>

p.456 그날 밤, 목사관에서 앨런 부인과 함께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 걸로 기쁜 저녁을 마무리한 앤은 열린 창 가득 비쳐 드는 찬란한 달빛을 받으며 기분 좋게 무릎을 꿇고 안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소망의 기도를 올렸다. 그것은 과게에 대한 감사와 미래에 대한 경건한 소망이 담긴 기도였다.

 

p.463 "내 방 창문이 해가 드는 동쪽으로 나 있어서 정말 좋아. 길레 이어진 언덕 너머로 아침이 밝아 오고, 뾰족한 전나무 꼭대기가 밝게 빛나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몰라. 매일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고, 갓 떠오는 햇살에 내 영혼까지 깨끗하게 씻기는 느낌이야, 아, 다이애나, 난 이 작은 방이 너무 좋단다. 다음 달에 이 방을 떠나 샬럿타운에 가면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어" 

 

p.469 "아, 깨끗하고 고요한 밤 속으로 돌아온 기쁨이여! 방의 정적을 뚫고 들려오는 바다의 속삭임과 마법에 걸린 해안을 지키는 험악한 거인처럼 거무스름한 절벽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지!"

 

p.475 "전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그저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 내고 새 가지를 뻗었을 뿐이에요. 초록 지붕 집에 있는 진짜 제 모습은 할결같아요. 제가 어디를 가든 겉모습이 어떨게 변하든 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요. 마음속엔 항상 어린 앤이 있어서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와 정겨운 초록 지붕 집을 날마다 더욱더 사랑할 거예요."

 

p.483 "아 야망을 품는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이렇게 많은 꿈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야망에는 결코 끝이 없는 것 같아. 바로 그게 제일 좋은 점이지. 하나의 목표를 이루자마자 또 다른 목표가 더 높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건가 봐, "

 

p.488 배리 할머니가 말했다. "앤은 항상 새로워. 다른 여자 아이들은 늘 똑같아서 짜증 나고 질리는데 말이야. 그런데 앤은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빛을 지니고 있는 데다 빛깔들도 하나같이 사랑스럽거든. 어렸을 때만큼 재미있진 않지만 그 아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나는 그렇게 사랑이 우러나게 하는 사람이 좋아. 그러면 내 마음도 쉽게 줄 수 있으니까."

 

p.489 "애들아 난 있잖아, 어떤 땐 시험이 전부인 것 같다가도 커다랗게 잎눈이 부풀어 오르는 밤나무며 거리 끝에 피어나는 희미한 푸른 안개를 보노라면 시험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p.490 "지금은 초록 지붕 집 아래 계속에서 보랏빛 제비꽃이 피어나고, 연인의 오솔길에서 어린 고사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장학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아. 난 최선을 다했고, '경쟁하는 기쁨'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어. 노력해서 이기는 것 못지않게 노력했지만 실패하는 것도 값진 일이라고 생각해. 애들아, 시럼 얘기는 이제 그만 하자! 저 지붕 너머로 펼쳐진 연초록 하늘을 보면서 에이번리의 진자줏빛 너도밤나무 위 하늘은 어떨까 상상해 보는 거야."... 앤은 창턱에 팔꿈치를 올리고 마주 잡은 손 위에 부드러운 볼을 댄채 꿈으로 가득 한 눈으로 멍하니 도시의 지붕과 뾰족탑 너머로 둥그렇게 빛나는 석양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젊음이라는 희망의 황금 실로 행복한 미래의 꿈으로 엮었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릴 장밋빛 날들은 모두 앤의 것이었고, 한 해 한 해가 희망의 장미로 피어나 영원히 시들지 않으 화관으로 엮어질 터였다.

 

p.492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얻거나 이루려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며, 야망을 품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긴 하나 합당한 노력과 절제와 불안과 좌절 없이 거저 얻어지지는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p.506 매슈가 없이도 세상이 변함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앤에게는 새로운 슬픔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전나무 너머로 태양은 떠오르고, 정원에 피어난 연분홍 꽃망울을 보면 전처럼 기쁜 마음이 솟구치며, 다이애나가 찾아오면 즐겁고, 그 명랑한 이야기와 몸짓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는 사실에 왠지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세상과 사랑과 우정은 전혀 그 힘을 잃지 않은 채 앤의 상상력을 붇돋워 주고 가슴 떨리는 감동을 안겨 주었으며, 삶은 여전히 또렷한 목소리고 끈질기게 앤을 부르고 있었다.

 

p.507 앨런 부인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매슈 아저씨는 너의 웃음 소리를 좋아하셨고, 주위에 있는 즐거운 것들 속에서 네가 기쁨을 발견해 내는 걸 좋아하셨다. 아저씨는 그저 먼 곳에 계실 뿐, 여전히 네가 그러길 바라실 거야.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의 힘을 거부해서는 안돼...."

 

p.526 "퀸스에서 돌아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밤 이후로 앤의 꿈은 작아졌다. 하지만 앤은 발 앞에 놓인 길이 아무리 좁다 해도 그 길을 따라 잔잔한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직한 일과 훌륭한 포부와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는 기쁨은 온전히 앤의 것이었다. 그 무엇도 타고난 앤의 상상력과 꿈으로 가득한 이상 세계를 뺏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앤이 나직이 속삭였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안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