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건투를 빈다, 김어준

2020. 12. 8. 16:01책읽기_1주1권/책읽기_여러분야

 

건투를 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평소 저자의 말투가 그대로 글에 나타나 있다. 나, 가족, 친구, 직장, 연인으로 나누어 저자의 생각을 진솔하게 표출하고 있다. 정면 돌파식 인생 매뉴얼이자 상담 집이다. 젊은이를 대상으로 쓴 글이어서 부모 입장에서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식이 부모에게 갖춰야 할 건, 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다>

p.127. 엄마는 한 번도 성적표 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한 번도 뭘 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며, 대학에 두 번씩이나 낙방하고 인생에 실패한 것처럼 좌절해 있는 아들에게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위로 대신에, 그깟 대학이 뭔데, 내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며 내 가슴을 후려쳤던 엄마, 그런 엄마 덕에 그 어떤 종류의 콤플렉스로부터도 자유로운 오늘의 내가 있음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 

p.128, 내가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는 말,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엄마는 이런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거나 이런저런 생각이 옳다고나 하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없다. 엄마는 고등학교 수험생 아들의 도시락도 싸주지 않을 만큼 날 방목했다. 당신도 유아원 운영하느라 바빴으니까. 나 역시 수험생이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부모 새벽잠을 뺏을 권리가 있나 여겼기에 한 번도 그런 일로 투정 부리거나 야속해해 본 적 없고. 그리고 그렇게 철저히 날 방목해주었기에, 무엇이든 해도 된다, 그러나 그 결과도 온전히 나의 책임이란 삶의 기본 철학을 일찍부터 터득할 수 있었다. 하여 그 방목에 무한히 감사한다. 하지만 엄마도 맹모삼천지교 따윈 관심 없는 부모였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말에 웃음이 난다. 아니 모친, 솔직히 모친이 언제 날 키웠소. 그냥 크게 냅뒀지

 

p.378

<불완전한 게 정상이다>

사실 당신이 그렇게 반응하는 거, 당신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사악한 왕비, 그 악당 보스만 딱 제거하고 나면 남는 건 오로지 오래오래 완벽한 행복이더란 어린 시절 동화부터 온갖 드라마, 영화, 소설, 게임 따위들이 몇 가지 갈등 뚝딱뚝딱 해결하고 클라이맥스 위기만 잘 넘기면 그 뒤론 행복 가득한 미래만 남는다는 식의 서사구조, 대량 유포해왔으니까.

그리고 마찬가지의 세계관으로 삶에서의 갈등과 스트레스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몇 가지만 고치면 누구나 완벽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사발치는 오늘날의 온갖 처세술과 성공학이, 그런 단선적 행복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으니까. 당신이 갈등과 스트레스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그런 스토리를 통해 때때로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를 받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그걸 실제 도달 가능한 자신의 행복 모델로 수용하는 순가, 오히려 진짜 불행이 시작되는 거다. 왜냐. 실제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거든. 삶이란 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갈등과 스트레스 그리고 무엇보다 불확실성과 부대끼는 거거든. 그 다툼이 끝난다는 건 당신이 죽거나 혹은 미쳤다는 걸 의미하거든. 그러니 갈등과 스트레스는 비정상이기는커녕 거꾸로 당신이 제대로 살아 있단 방증이다. 그 자체로 매우 정상적인 삶의 일부라고. 그렇게 불완전한 인간에게 평생에 걸쳐 언제나 삶의 한 요소일 수밖에 없는 걸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어떻게 행복해질 수가 있겠나.

그러니 문제 그 자체를 문제 삼지 말고 그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에만 언제나 집중하시라. 그러지 못하고 문제 자체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휘둘리고 마는 자들, 왜 유독 내 삶에만 이리도 문제가 많냐며 스스로 비탄해마지않는다. 갈등과 스트레스가 있거들랑 기꺼이 갈등하고 스트레스 받으시라. 그게 갈등과 스트레스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다. 그렇게 불완전한 게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