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난, 엄마가 없다

2023. 10. 22. 22:43소소일상

 

난, 엄마가 없다

 

엄만 10년간 물으셨다.

먼 타국에서 전화드릴 때마다 "넌 언제 오냐..."라고. 

그래, 이제 엄마 곁으로 왔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이들 키워주셨던 10년만이라도,

엄마와 함께 해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요양병원 가시기 전까지

엄마와 한 집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아직도 엄마와 남은 10년을 채우며 살고 있다.

엄마가 쓰셨던 호마이카 장롱, 덩치 큰 소파,

그리고 자잘한 살림살이들, 키우셨던 화초들까지...

아침 거실에 나오면 소파에 여전히 앉아 계실 것만 같다.

함께 걸었던 아파트 산책길, 동네 마트, 동네 맛집...

가는 길마다 엄마가 계신다.

혼자 길을 걸을 때도 엄마는 금세 내 곁을 따라 걸으신다. 

혼자서 웃다가도 혼자서 금세 울먹거릴 때도 엄만...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다.

냉장실도 냉동실, 김치냉장고도 텅텅 비었다.

맨날 외식 타령이다.

의욕이 사라졌다.

모두가 귀찮다.

 

날마다 만들었던 저녁만찬도

아침마다 싸주었던 남편 도시락도

손수 담갔던 엄마맛 배추김치도

영양소 운운하며 가려 만들었던 반찬들도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카톡방을 정리했다.

여러 모임도 모두 미루었다. 

전화기만 붙들면 꼴딱 밤새웠던 여동생과도 연락이 끊겼다.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다.

아무와도 연결하고 싶지 않다. 

 

블로그까지 조용하다.

책 읽고 글 쓰는 것도

카메라 메고 쏘다니는 일도.

모두 귀찮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엄마만 생각난다.

 

 

엄마에게 가오

 

인문여행 '강릉으로 떠나오_하루 시인으로 살기'

숙제는 '포토에세이 읽기'와 '좋아하는 시집 가져오기'다.

집에 읽을만한 시집이 한 권도 없다.

어려운 시집들만 가득하다.

 

동네 책방을 오랜만에 찾아 나섰다.

좋아하는 기다란 원목 테이블이 한눈에 들어온다.

책 읽는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있다.

얼렁 앉아서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시집 서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가 앞에서 뒤적뒤적 한참을 서성인다.

돌아가려는 참에, '사랑하는 나의 엄마에게' 책 제목이 눈길을 끈다.

피천득, 이청준, 정채봉, 이해인...

수십 명의 작가가 함께 낸 짧은 편지 시집이다.

 

그들 마음에 담긴 '나의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긴 테이블 한켠에 자리를 틀고,

우리의 엄마들을 한눈에 읽어내린다.

다시 가슴이 울먹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도 엄마에게 편지를 써야지

 

 

엄마, 저예요

 

엄마 큰 딸요.

엄마,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아버지와 만나 알콩달콩 지내시는지,

아니면 여전히 티격태격 하시는지...

 

엄마가 가신지 100여 일, 꼭 100년이 지난 것 같아요.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된다는데, 

아직도 엄마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생각하면 너무나 휑한 거 있죠. 

평소 살갑지도 않은 무심한 딸이었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엄마 마음 쓰이게 했던 지난 일들이 생각날 때면

얼마나 죄송하고 속상한지요.

 

엄마 근데요, 

엄마가 하늘나라 가시고

그간 두문불출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오늘은 모처럼 글친구들과 동해바다 강릉에 왔어요.

바닷가에 오니 엄마 생각이 더욱 간절하네요.

부서지는 파도를 따라 모래밭을 거닐며 엄마 생각에 한참을 잠겼지요.

 

엄마 그때 생각나요?

엄마 8순 잔치 때 엄마가 좋아하는 바닷가를 찾아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5남매 자손 대가족이

이곳 동해 바닷가에 왔을 때 말이에요.

 

꼬맹이들까지 모두 깔 맞추어 옷 갈아입히고

하하호호 즐겁게 보냈던 그 시간 말이에요.

마을 사진관에서 모두 청바지 갈아입고 맨발 벗은 채

깔깔거리며 가족사진도 남겼지요.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옹기종기 함께 모여 앉아

먼저 가신 아버지 이야기도 나누며 보냈던 그 추억의 바닷가요.

흐뭇한 모습으로 자손들을 바라보셨던 엄마의 미소가 눈에 선해요.

 

오늘은 글쓰기 친구들과 함께 강릉에 왔는데요.

강원도 출신 시인 <허난설헌 기념관>을 들렀답니다.

허난설헌, 생소한 이름이죠?

조선시대 여류시인인데요, 시와 학문에 천재였대요.

 

세계적 여성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남편과 시댁 갈등, 자녀 죽음 등으로 

결혼생활이 원만치 못했다지요. 

하지만 연이은 불행 속에서도 시를 지으며 꿋꿋하게 삶을 이어갔네요. 

 

저도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시댁과의 갈등으로 한동안 참 힘들었죠. 

그때마다 제 옆에는 엄마가 계셨지요.

힘든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그때마다 많이 속상하셨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근데요, 기억이 하나 또렷하게 떠오르네요. 

직장 다니다 결혼 후 아이들 돌보며 집에 있을 때였죠.

어느 날 엄마가 저를 붙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셨죠.

"아이들은 내가 돌볼 터이니 네가 하고 싶은 것 해라"라고요.

그 말씀에 용기내어 하고 싶은 일을 잘 이어갈 수 있었지요.

 

엄만, 한결같이 우리 곁을 지키시면서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지요.

10년간이나 두 손주 녀석들 키우며

살림까지 도맡아 하시느라 말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바르게 잘 성장했어요.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행복한 어린 시절을 종종 추억하곤 하죠.

할머니 소식 전하는 날, 

전화기 붙들고 아이들이 얼마나 울던지요.

 

엄마가 아니었다면,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예요.

 

근데 말이죠, 엄마에게 한 번도 고맙다 표현을

제대로 못했다 말입니다.

이제라도 고개 숙여 말합니다.

"고마웠습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