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3. 22:40ㆍ책쓰기
괜찮아, 괜찮아! 그냥 놀아도 괜찮다고?
놀기로 했다
오랫동안 해오던 일을 그만두면서 <반희야 놀자> 블로그를 개설했다. 본격적으로 놀겠다는 공표였다. 평생 열심히 일했기에 놀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세상이 다 내 것이 되었다. 아침이면 허둥댈 필요가 없고 잠들기 전 알람을 세팅할 필요가 없다. 늦잠도 자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나면 되었다. 더는 내가 책임져야 할 외부의 책무는 없어졌다.
그러나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생활이 그렇게 바랐던 그 생활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무얼하고 놀까??
우선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가족을 위해 아침은 차려 주고 함께 식사도 한다. 가족이 나가고 그다음이 문제다. 설거지부터 하기 싫다. 집안을 치우기는 더욱 싫다. 외출할 일도 딱히 없으니 씻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들은 인터넷으로 다 해결했으니 쇼핑으로 시간 보낼 일도 없다.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돌아다닌다. 서가에서 읽고 싶은 책도 몇 권 꺼내놓지만 한두 장 넘기다 금방 책장을 덮는다.
카톡방을 전전하며 열심히 댓글을 달며 소통도 해본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전화기 버튼을 누르고, 전화가 연결되면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떤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약속을 정하고, 밥집과 찻집을 찾아 헤매고, 만나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떤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며 달력에 표시해두고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약속한다.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며 관련 모임에도 나가고 수강 신청하여 공부도 해본다.
블로그는 어때?
그냥 놀기가 쉽지 않아 자꾸만 일을 만든다. 책 읽으며 놀자. 글 쓰며 놀자. 걸으며 놀자. 사진 찍으며 놀자. 잘 놀기 위해 또 공부한다. 블로그 만들기, 인스타그램 만들기, 사진 찍기, 책 읽기, 글쓰기, 책 쓰기 공부까지. 온종일 블로그에 글 남기기 연습을 한다. 누가 볼지도 모르는 글, 내 생각이라며 마구 올린다. 생각이 정리도 되지 않은 글 누가 읽을까 봐 조바심 난다. 하긴 아무도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블로그에 사진만 줄줄이 올려놓았더니 주변에서 설명을 남겨보란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파워블로거 강사의 블로그 수업도 들어보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요즘 인기 있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롭게 만들어 그간 모아둔 사진 몇 장을 올리고 또 설명도 달아본다. 일단 다른 사람의 계정에 들어가 좋든 싫든 ‘좋아요’ 하며 관심을 표해야 한다고 해서 소통을 시도해보기도 한다. 큰 재미가 없다.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하는데 점점 관심이 없어져 들어간 지 오래되어 이젠 계정 찾기도 힘들다.
사진 찍기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어본다. 조리개가 어떻고 노출이 어떻고, 두 달을 배웠지만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금방이라도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실사 촬영을 다니며 배운 것을 적용해볼 것 같은데 그 엄청난 기능을 익히기 어렵고 여전히 잘 모르겠다. 차라리 간편하게 스마트폰으로 찍는 게 보기에도 더 좋다.
책 읽기는 어때?
책 읽기, 이건 그나마 조금 낫긴 하다. 하지만 그냥 읽기가 심심해서 아니 제대로 읽고자 후기를 남겨본다. 후기를 남기려니 글쓰기가 안된다. 아니 내 생각을 표현하기가 이렇게도 어렵다니. 생각이 없는 것인지 표현력이 없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인터넷을 뒤져 동네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하고 종강 후 평가회에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며 호들갑을 떨어보지만, 정말이지 글은 못 쓰겠다. 주변에서 블로그 글이 너무 짧다며 길게 써보라지만 사실 쓸 말이 별로 없다.
1주일에 책 1권 읽고 1년에 책 1권 쓰자는 문화 운동에도 참여해본다. 책 읽기는 그나마 할 수 있으나 책 쓰기가 문제다. 어느 한 해는 책을 쓰느라 100일을 꼼짝 않고 만사를 제쳐놓고 책 1권 완성했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도저히 상업 출판할 자신이 없어 결국 소장용으로 출판하고 말았다. 살면서 완성한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다.
놀며 일하자고?
한참을 헤매고 있는 터에, '놀며 일하자'라는 말이 유행어로 등장했다. 딱 보아도 나와 찰떡궁합이다. 놀고먹으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니. 주말이면 가족과 서울 곳곳을 놀러 나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기사를 만들어 기고했다. 놀러 다니며 좋아서 찍은 사진이 기사로 재생되어 돈벌이가 되는 게 신기했다. 꾸준히 하다 보니 우수기자로도 뽑혔다. 여기저기 시민기자 모집 광고가 나오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지원한다. 그래도 경력자라고 지원만 하면 무사통과다. 도서관에서 일할 사람 모집한다기에 맨 먼저 줄을 섰다. 좋아하는 책도 읽고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다니.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니 즐겁고 삶의 활력이 생긴다. 이런 경험담을 올렸더니 블로그 구독자도 하나둘 생기고 그들과 소통도 하게 되었다.
요즘은 놀러 다니면서 일한다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에 귀가 더욱 쫑긋해진다. 디지털 능력만 있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나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니. 물론 디지털 능력을 갖추는 게 급선무이지만, 놀며 일할 수 있다면 이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다. 게다가 장소도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 나에게 맞은 일을 찾아서 할 수 있다니. 그래 바로 이거다. 이제 디지털 능력만 갖추면 된다.
돈을 번다는 것은 일한 만큼의 능력을 인정하여 보상해주는 것, 조금이나마 돈을 버니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게 되니 일하는 것이 더욱 즐겁고 꾸준히 하게 된다. 그리고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야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놀아도 일하며 인정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인정을 먹고 사는 존재, 맞다.
일을 그만두자마자 '놀자'를 결심하고 블로그를 오픈한 지 3년, 뒤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 버는 길, 즉 나를 인정해주는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놀기 위함보다 오히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도 즐겁게 놀며,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버는 일이 없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은퇴하고 놀려고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선배로서 진지하게 충고한다.
"놀아도 정말 괜찮다고?" "아니, 놀며 일해야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