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기] 인쇄된 기억 - 김진해 / 한겨레신문 2020-03-15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애가 닳고 약이 올라 그 단어 주변을 계속 서성거린다.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입에 굴렸다가 뱉어내고, 비슷한 뜻의 표현을 되뇌면서 추격한다. 가리키는 대상이 구체적이고 협소할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 그래서 이름(고유명사)을 가장 먼저 까먹는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머리에 구멍이 숭숭 나고 있고 내 안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아챈다. 어딘가 막히고 끊어지고 사라져 가고 있다. 늙는다는 건 말을 잃는 것. 우리 어머니도 말년에 말을 잃어버렸다. 말동무가 없던 게 큰 이유였지만 스스로를 표현할 힘도 잃어버렸다. 나도 단어를 잃어버림과 맞물려 완고해지고 있다. 완고하다는 것 약해졌다는 뜻. 일반적으로 실어증의 원인을 '망각'에서 찾지만, 프로..
2020.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