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9. 12:31ㆍ나랑놀기/이생각저생각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지난 금요일 저녁, 두 자매의 통화, 왕수다가 시작되었다. 저녁에 시작된 수다가 밤을 건너 새벽녘에 끝이 났다. 장장 7시간, 또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평소에도 통화하면 한두 시간은 훌쩍 넘긴다. 우리의 수다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왜 그럴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시골에서 살았던 우리
시골에서 살았던 우리는 오빠 3명이 있었다. 5남매가 함께 지내다가 언제부턴가 오빠 3명은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 도시로 갔다. 3살 터울인 우리 자매는 오빠들이 없으니 둘이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디를 가든지 함께 다녔다.
교내 관사에 살았던 우리는 엄마가 머리 모양과 옷 색깔을 맞추어주면 공주 자매가 되어 시골 동네방네를 뽐내며 돌아다녔다. 풀밭을 돌아다니며 꽃을 따서 머리에 꽂기도 하고 손목 팔찌도 만들어 끼었다. 학교가 파한 후에도 둘이서 넓은 운동장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우리 집 마당이나 다름없던 운동장에서 엄마가 찾으러 올 때까지 술래잡기, 인형놀이, 소꿉놀이, 철봉 놀이, 자전거 놀이에 시간 가는지 모르고 놀았다. 집에서 빨래할 수 있음에도 몇 개 안 되는 옷가지를 바구니에 담아 어른들 흉내 내며 머리에 이고 동네 시냇가에 나가 나란히 앉아서 빨래를 하곤 했다. 야무진 동생은 순둥이 언니가 친구와 말싸움에 밀릴 때면 야무지게 나서서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혼자 다닐 때면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한 명은 어디 있냐고 물었다.
자매들은 중. 고. 대학 때도 함께 지냈다. 언니가 대학 졸업 후 다른 지역으로 취업을 하게 되어 잠시 떨어져 지내자 동생도 같은 지역으로 진학해 함께 지냈다. 언니가 결혼하자 동생은 독립하여 잠시 혼자 생활했다. 그러다가 언니가 시댁 살이 끝내고 분가하자 언니 집에서 다시 함께 지냈다. 동생은 결혼을 한 후에도 언니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러다 언니가 직장 때문에 지방으로 가게 되었고 다음 해에 동생도 남편 직장을 따라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멀리 사는 자매를 연결해 준 전화
이후 자매들은 서울과 지방, 한국과 외국,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전화는 멀리 있는 두 자매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되었다. 생각날 때, 보고 싶을 때, 기쁠 때나, 슬플 때도 무시로 통화를 했다. 국제통화도 6-7시간은 기본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아쉽게도 또 서울과 지방에 떨어져 살고 있다.
친정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아예 밤을 새울 요량으로 채비해 간다. 친정엄마의 강권으로 그나마 한두 시간이라도 새벽에 눈을 붙이긴 한다. 각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이어폰을 꺼내어 또 통화한다. 요샌 요령까지 생겨서 밥 먹으면서도, 요리를 하면서도 통화할 수 있다. 길을 걸을 때는 물론이다. 시장 갈 때, 수영장 갈 때, 교회 갈 때, 컴퓨터 배우러 갈 때도 틈틈이 통화한다. 왕수다를 위한 전화 통화는 이제 자매의 소중한 일상이 되었고 상황과 무관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전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통화시간을 통제가 어렵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통화시간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현실을 파악하여 자제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요샌 그나마 눈치가 생겨 식구들이 다 잠든 조용한 밤 시간에 통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서 주변에선 재미있는 연구대상이라며 분석과 비판을 해준다.
첫째 이유는 둘이서만 통하는 세계가 있어서 그렇단다. 맞는 말이다. 다른 누구와도 통하지 않은 뭔가가 있다. 일단 신앙이 같고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하다. 둘째는 대화기술이 부족해서란다. 이것도 맞는 말인 거 같다. 한 얘기 또 하고, 그것도 부족해 얘기하다가 주제를 벗어나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다반사다. 누군가 한 사람이 신경 써 본래 주제를 찾아와 마무리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누가 뭐라 하든 우린 나름대로 할 말은 있다. 서로 먼데 사는 우리가 만나려면 각자 가족과 살림을 제쳐두고 왕복 8~9시간 걸려 만나느니, 통화로 대신하면, 시간, 에너지, 경제적으로 훨씬 효율적이다고 주장한다. 한편 가족들에게도 나름 좋은 모범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여자 조카들은 나중에 크면 엄마와 이모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은근히 부러워한다. 오히려 칭찬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수다의 주제는 무얼까
그렇게 자주 하는 수다의 주제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시콜콜한 주제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항상 시시콜콜한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심각한 주제까지 세상만사가 대화의 도마 위에 오른다.
결혼 전에는 꿈, 진로, 우정, 사랑, 전공, 학업, 직장, 친구, 가족, 결혼, 신앙 등이 주제였다면 결혼 후에는 자녀양육, 살림, 요리, 시댁, 친정이 더해졌고, 근래 들어선 독서, 글쓰기, 영어, 블로그까지 끝도 갓도 없다. 이번처럼 사뭇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얘기할 때도 있다. 우리의 영원한 숙제이자 부담인 독서와 영어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우선 독서, 고전 읽기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는 지난 3월 1일부터 초등 고전 100권 읽기를 시작했다. 딱 1주일이 지났다. 둘 다 서너 권 정도 읽었다. 읽고 난 느낌을 한참을 나눈다. 나이 들어 고전 읽기는 처음이기에 당연하다. 물론 어린 시절 읽었던 책도 있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읽었던 것도 있다.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라느니, 아직도 소녀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느니, 동화 속 주인공들과 생각이 우리와 똑같다느니. 그러다 우리는 여태껏 이 좋은 책도 다 안 읽고 뭐 하면서 살아왔냐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와 거의 마무리가 된 것 같다가도, 잘 한 결정이라고, 지금이라도 다행이라고, 다시 목청을 높여 한참 열변을 토한다. 일단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자고 굳게 약속한다. 독후감도 제대로 써보자고 의기투합한다. 과연 얼마 동안 지속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음은, 영어 공부에 관한 얘기다. 영어전공인 동생, 미국 살았던 언니, 늘 우리 뒤를 따라다니는 영어공부에 대한 부담이다. 당장 영어 안 해도 사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는 상황인데 왜 영어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다시 근원적인 질문들이 오간다. 늘 심각하게 했던 질문들이다.
왜 영어공부를 이제라도 해야 하는지, 영어를 잘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영어를 잘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영어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최소한 몇 년은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데 과연 꾸준히 해낼 수 있을지 등이다. 그래도 일단 영어문법부터 시작하자고 굳게 약속한다. 이 약속도 사실 몇 번째인지 모른다.
결론은 한 문장
7시간이나 얘기했는데, 결론은 한 문장이다. "책 읽기와 영어공부를 당장 시작하자는 것"이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 결론을 내기 위해서 왜 장장 7시간이나 걸렸는지. 이 순간도 자매는 통화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